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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

사랑의 언어라는 책이 있다.

사랑의 언어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했다.

 

순서에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스러운 말, 사랑이 넘치는 스킨십,

함께하는 시간, 물질적인 선물, 마지막 하나는 희생이 맞았던가 가물가물하다.

 

어제 저녁, 남편에게 서운함을 토로하고

잠이 오지 않아 침대에 누워 세시간 넘게 뒤척이다 울다 살짝 잠들다 울면서 깨다를 반복했다.

 

꿈속에서 엄마한테 받았던 상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는데,

그 마음아픔에 울때는 분명 남편이 나를 봐주고 있었는데

점점 꿈에서 깨면서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꿈속보다 더 적막하고 외로웠던 것 같다.

 

엄마랑 싸우기 시작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겨눌 수 있는 모든 무기를 다 사용했었다.

내가 엄마에게 썼던 무기는 

엄마에게 드렸던 월급저축, 엄마에게 소소한 일상을 재잘되던 일상 같은 것이었을까

 

이미 엄마가 나를 통제할 수 없는 나이가 지나서 시작된 싸움이라

엄마가 쓸 수 있는 무기는 몇개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중에 하나가 ' 밥 챙김 ' 이었다.

엄마는 가족 중 누가 늦게오더라도, 식사를 여러번 차리는건 너무 번거롭다는 이유로

늦는 가족을 기다려서 다같이 식사를 하게 했었고,

현빈이가 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면 막내 현빈이를 기다려서 다같이 식사를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근데 어느 날 부터였을까 기억은 나지 않는데

저녁 식사에 일찍 올 수 있는 학생 동생과 백수 동생과는 달리

1시간 넘게 출퇴근을 해야 하는 내가 

가족 식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이미 내가 도착했을때 모두가 먹었거나 먹고 있거나 했고

내가 밥을 먹을건지, 먹었는지, 먹고 싶은지에 대해서 아무도 챙겨주지 않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건 '네가 너무 늦게오니까' 라고 쉬운 변명에 감춰질 수 있는 그런 무기였던 것 같다.

 

그러다 꿈에 그 장면이 나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닭도리탕

엄마는 내가 닭도리탕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고,

자주 해주었었다.

 

그리고 굶주린 배로 퇴근해서 이미 가족들의 온기가 지나가버린 주방에

되는대로 남겨진 닭도리탕을 봤었나보다. 

그게 꿈에 나왔는데 본적이 있는 것 같다.

기억 저 너머로 던져버렸던 건지, 외면했던 건지 

 

내가 좋아하는 다리는 없었던 것 같다.

퍽퍽 살 몇조각만 남은 볼품없는, 찌꺼기같은 닭도리탕에 너무 화가나서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울렸지만 먹지 않았다.

 

 그 이후였을까

혼자서 저녁을 해결하고 들어가거나

그 마저도 매일 밖에서 끼니를 먹는게 부담스러울때면

그냥 집에 와서 배고픈채로 잠드는 일상을 보냈다.

 

그 즈음에는 가끔 남자친구랑 저녁에 데이트를 했고

나의 저녁을 챙겨주는 남자친구 덕분에 그 시간을 버텼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굶주림에, 서운함에 울면서 방에 혼자 있을때

가족들은 거실에서 치킨을 시켜먹었다.

 

꿈 속에서 그 남겨진 닭도리탕을 보고, 

'아 그래도 엄마가 만든 닭도리탕 맛있겠다' 생각했다.

'저 살을 찢어서 먹어보고 싶다' 생각했다.

 

괜한 자존심 부리다가 닭도리탕도 못먹게 되었던게 싫었던걸까?

 

그런데 꿈속에서조차 먹을 수 없었다.

먹고싶었는데, 목에서 생선가시가 자꾸 튀어나오고 

목에 가득 생선가시가 막혀있었다.

너무 아프고, 속상해서 울다가

남편이 지켜봐주는 느낌에 더 서러워져서 울다가

울면서 깼는데 아무도 없었다.

 

 

내가 어제 서운했던건

1,400일이라는 기념일에마저 

나의 끼니를 챙겨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었다. 라고 정리할 수 있겠지만

 

꼭 우리는 기념일에, 내가 기념일에만 서운함이 몰려오는 편이라

'기념일 중독자인가?' 싶다가도

내가 기대를 말자... 싶다가도

기대를 안하게 되는 상황도 우울해지고,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어제 확실하게 알게 된 하나는,

나의 사랑의 언어가 남편과는 다르다는 것.

 

남편은 사랑하는 말과 스킨십이 풍부한 사람인데,

물론 그것도 너무 좋지만

나는 나의 '밥걱정'을 해주면 더 감동을 받을 것 같다.

내가 밥은 먹고 오는지, 먹을 건지, 먹고싶은건 없는지 살펴봐주고

내가 필요한 건 없는지, 미리 챙겨봐주고 하는 것

 

엄마가 나랑 싸울때 거둬 들인 그런 사랑

그걸 남편한테 기대하고 있었구나 하는걸 깨달았다.

어떻게 보면 그건 누구에게도 기대해선 안되는 것이었을수도..?

나는 내 몫을 잘 해내는 성인이고, 다 큰 어른이고,

요리도 잘하고 주변도 잘 챙기는 여성이니까

이제는 누가 날 챙겨줄 필요가 없을텐데, 나는 아직도 그걸 원하고 있었구나.

 

엄마랑 나는 자존심의 끝까지 세우고

끊임없이 서로 상처주고 싸우다

결국 어느 시점엔가 툭하고 끊어졌다.

그걸 다시 이어붙이는 일은 너무 어려워서 

내가 혼자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서 지금은 거의 포기한 것 같다.

 

그리고 그 상처는 생선가시처럼 내 목에 박혀있는 것 같고

 

어제 문득 그런 생각도 했다.

남편이랑도 그렇게 될수도 있다고.

내가 자존심을 계속 세우고 

너를 사랑하는 나의 '밥걱정'을 다 거둬들이고

 

이제 네가 뭘 먹는지, 뭘 먹을지, 뭘 먹고싶은지

옷은 빨아야 하는지, 새로 사야하는지, 양말과 속옷과 수건은 충분한지

세심하게 돌보고 

아침에 웃는 얼굴로 시간을 들여 너를 깨우고

잘때 안경은 벗고 자는지, 핸드폰은 충전 했는지, 배를 까고 자도 괜찮을지

너무 춥거나 덥거나 하지 않을지

내일 가져가야 할 것들을 까먹지 않을지

 

그런 걱정들은 나의 사랑의 언어다.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의 언어인 것이다.

 

사랑의 언어, 그 책에는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라고만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그 다름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럼 이제 된걸까?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언제까지 한쪽만 다른 사랑의 언어로 대화를 하면

그 대화가 평생 이어질 수 있을까?

나는 나 혼자 내 언어로 사랑을 얘기하다 지쳤던 것 같다.

그건 1,400일이라는 기념일에 가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