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읽은 소설들 중에 가장 장편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4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이야기가 과연 재밌을지 의문이었는데,
조금씩 캐릭터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중후반부에 달해서는 몰입감이 좋아 금방 읽어버렸다.
저자의 시점은 시어머니인 아키미
아들 고헤이가 며느리의 전남친에게 살해당하고
며느리와 손자 나유타가 시댁에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전체적으로는 그녀의 '의심 가득한 시선'에 숨막혔던 것 같다.
그녀의 '의심의 눈초리'로 보여지는 며느리 소요코는,
물론 조금은 감정을 절제하고, 감정간의 이동이 신속하고 (전날 슬프거나 놀라도 다음날이면 멀쩡하다던가)
머리가 좋고, 약간의 욕심도 있고... 아키미의 눈으로 보여지는 소요코는 의심의 구석이 많았고,
나도 워낙 막장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가
손자 나유타가 친 손자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의심에 DNA 검사까지 시행하는 시어머니 아버지의 모습과
서류상 99.5% 친손자로 나왔음에도 끊이지 않는 의심의 고리들...
(혹시라도 소요코가 서류를 바꿔치기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막장드라마 스멜을 의심했더랬다)
주인공 아키미가 점점 의심하고, 더 의심하고,
그 와중에 몸과 마음이 다치고, 심근경색까지 오는 걸 보면서
내 마음도 조여드는 듯 했다.
나는 원체 사람을 잘 믿는 편이기도 하고,
의심과 편견의 색안경을 통해 보는 것이 다른 사람의 진의를 얼만큼 왜곡할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구태여 먼저 의심을 하거나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의심의 골에 빠져버린 여인의 시점으로 모든 것을 보는게
그만큼 되게 색달랐고, 오히려 가엾기까지 했던 것 같다.
결국 끝에 끝에는
소요코에게는 나름의 해피엔딩이었고,
우리가, 아니 주인공 아키미가 의심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막상 소요코의 삶에도 얼마나 많은 편견과 오해, 의심이 영향을 끼쳤을지 가엾기까지 했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을 전남친을 사주해 죽이고,
시댁에 들어와 시어머니 시아버지도 죽이고 모든 것을 독차지 하는
그런 종류의 어떤 막장도 없었다는게 오히려 반전이었달까.
소요코는 모든 것에 조심스럽고 신중했고,
남의 말을 함부로 전하지도 않았으며,
표정이나 행동으로 마음을 드러냄 없이 고요했다.
그로 인해 생긴 어떤 오해, 어떤 의심들이 아키미를 좀먹었던 것이 이 소설의 전체 내용이랄까.
요즘 나도 때때로
내가 보는 것들, 내가 느끼는 것들이
어쩌면 내가 왜곡해서 해석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교묘히 업무에서 나를 배제하는 것이라던가
회의가 있음에도 나만 쏙 빼고 가버리는 팀원들이라던가
그들에게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자꾸 의심의 눈초리로, 편견과 오해로 보다보니 그렇게 해석한 것은 아닐까
그저 나를 배려하는 것 일수도 있고,
그저 깜빡 실수로 나를 잊은 것일수도 있는데
내가 나 자신을 아키미처럼 좀먹어 가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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